우리집 앞의 육교가 없어지고 내 오랜 소원이던 횡단보도가 생겼다. 나는 늦게서야 남편을 통해 그 사실을 알고서 애를 남편에게 맡기고 추운 날씨에도 패딩잠바 입고 나가서 육교가 없어진 자리를 찾아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보고, 정류장도 살펴보고, 지하철쪽에도 가보았다. 그쪽은 아직 횡단보도를 그리진 않았지만 신호등은 달려있었다. 나는 한참을 서있었다. 너무나 기뻤다. 내 옆에는 한 아저씨도 서서 나처럼 감개무량한지 달라진 길을 보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 산 십년 동안 나는 세 번을 육교를 없애고 횡단보도로 바꿔달라고 요청을 했다. 민원을 내는 것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져서 다른 방법으로 제안을 시도했었다. 신체건강한 젊은이기에 '귀찮다' 정도의 느낌이었던 육교가 임신을 하고 애를 낳은 뒤부터 '접근불가'의 괴물단지가 되어버리자 아니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일반 지역 주민의 편의와 가구거리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횡단보도였다. 애를 안 데리고 다니더라도, 마을 버스 타러 길을 건너갈 때 빤히 코앞에 서있는 마을 버스를 보면서 죽어라 달려가도 못 타는 억울한 일을 몇번씩 당하다보면 절로 화가 나게 된다.(아래에 있는 버스 기사는 위에 있는 나를 절대 볼 수 없다.) 편히 앉아서 가는 사람들의 몇초 시간 단축을 위해 힘들여 걸어서 가는 사람들이 '강요된 양보'를 해야하다니, 차가 사람보다 중요한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정말이지 화가 나고 슬프다. 박통 시절 어떻게든 굶지 않고 잘 살아보겠다고 경제, 경제 하느라고 벌여놓은 치졸한 구조물을 아직도 안 치우고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어이없고 그간의 세월이 허무하다.
그런데 잘 하는건 '삽질' 하나밖에 없는 정권의 덕분인지 갑자기 몇달만에 뚝딱 중앙버스정류장이 생기면서 나의 십년 숙원을 풀게 된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내가 MB 정권에게 감사할 날이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백이면 아흔 아홉가지 다 잘못했더래도, 어쨋거나 나는 고맙다. 아이를 데리고 이수역 사당동과 방배동 사이를 건너다녀야 하는 엄마로서 가장 절실한 선물을 받은 것이다.
사당동에 살 때에 애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 길을 건너지 못 해 지하철까지 가서 엘리베이터를 오르락 내리락 고생하던 일들을 생각하면, 눈물 난다. 육교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데도 맘대로 가지를 못하게 하는 족쇄였다. 그때 만약에 횡단보도가 있었다면 나는 훨씬 더 행복했을 것이다. 우리는 방배동 쪽에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갈 수 있었을 것이고, 나날이 되풀이되는 업무에 지친 나에게는 적절한 활력소가 되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 딸린 죄로 아무 데도 가지 못 하는' 후진 나라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는 운명을 탓하는 일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가 많이 커서 대개는 걸어서 다닌다. 그래도 이제 이번 주말만 지나면 우리 아이는 횡단보도를 건너서 버스를 타고 외가집에 갈 수도 있다. 신종플루 때문에 지하철은 많이 기피하고 싶지만 버스는 괜찮으려나. 아무튼 하고 싶으면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태평 백화점도 그냥 건너갈 수가 있다. 예전에 다니던 수선집도 잠깐이면 갈 수 있다. 많은 자유가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