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편에게 나의 고민을 눈물로 토로하다가 문득 깨달은 하나의 사실은, 나는 아직도 구조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있다는 것이다. 나의 고통스럽던 20대와 마찬가지로, 육아 5년의 세월에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지금의 나 역시.
내가 중고등학교때 배운 관념들이 있다. 교과서에서도 (그때만 해도 야당지였던) 동아일보에서도 배울 수 있었던 하나의 중요한 관념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개인의 탓이 아니다, 혼자 힘으로 될게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개인이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더 어려서부터 주입되었던 관념들, 우리나라에 만연하던 '애국주의'와 전체주의랄지 민본주의랄지 알 수 없는 '나 혼자만 잘 살려고 하면 안 된다,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특히나 우리 집안에서 뿌리깊었던 '너만 생각하지 마라', '남에게 양보해라'와 같은 미덕들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생의 목표는 자아실현이다'와 같은 관념도 같이 배웠으니.
그 모든 관념들의 결과로 20대의 꽃다운 시절 나는 이 사회의 뿌리깊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 하면서 나 혼자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믿음이 없었다. (물론 근본적으로는 어린 시절 나의 주체성을 세우지 못하고 '착한 아이'가 되는 데에 모든 힘을 써버렸다는 원인이 있기는 하다.) 남들은-박해받는 노동자라든가 등등등- 고통받는데 나 혼자 누릴 것들을 누리며 살기엔 너무나 양심의 가책이 심했다.
그렇다고 노동운동을 하거나 학생운동이라도 하거나 사회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할 수 없었다. 그런 것들을 하면 우리집안에 피해가 간다는 부모의 겁주기에 굴복하기도 했고, 그런거 하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좀 논리가 많이 딸리는 문제도 있었고, 나는 정말이지 사람들 만나서 뭔가 하는 데에 재주가 없기도 했다. 희생이 무섭기도 했다.
한번의 힘에 부치는 노력을 한 후에, 나는 점차적으로, 사회를 바꾸기를 포기했다. 나는 사회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개인의 행복을 유보한다는 어리석은 관념을 떨쳐내고자 긴 세월을 노력했다. 여전히 세상은 문제투성이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변화의 빛을 보고, 희망의 낌새를 채고, 나름 나의 독자적인 노선을 가면서 즐거울 수도 있는거라고, 의미있을 수도 있는 거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락밴드고 하고 책도 쓰고 하며 한참을 보냈다.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의미'에 물을 타서 농도를 바꾸도, 다른 색깔을 흘려넣고 하면서 버티었다. (나에게는 '역사'나 '사회'의 무게가 실리지 않은 '의미'라는 것이 어려웠었다. 구조가 없는 의미라니 말도 안 된다. 하필이면 전공도 '언어'다. 의미는 구조 안의 위치에 따라 정해진다.) 나라는 사람 개인의 행복을 위해, 그 속에서도 의미를 찾기 위해 애썼고, 점차적으로 나도 뻔뻔해지고 덤덤해져서 부모의 지원을 받아 결혼도 하고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먹고 살며 예술을 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지금까지는, 나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아이를 잘 키우려고 했다. 지금의 나의 문제들을 발생시킨 원인들을 부모의 양육과 학교, 사회의 교육에서 찾아내고 그 문제들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이 나의 플랜이었다. 내가 겪었던 섭섭한 경험들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나의 경험들을, 지금가지의 나를 이룬 핵심적이고 중요한 어린시절의 경험들을 다 풀어헤쳐서 가릴 것은 가리고 고를 것은 골라서 나는 내 아이에게 실수하지 않기 위해, 나의 부모보다 분명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노력했다. 힘들어서 우울증이 걸리도록, 나는 노력을 멈출 수 없었다. 균형있는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그렇게나 미련하게 노력한 것은, 내가 아이를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나의 어린시절의 한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는 얘기다. 그걸 깨달은 뒤로 또 시간이 지나, 나는 이제 어느 정도 멈추었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참 많이 바뀌었다. 나의 30대는 기천이라는 무술을 배우면서 시작되어 몸에 좋은 운동을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몸이 건강해지고, 몸이 건강해지자 욕심이 생겨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지나갔다.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 나와 남편은 비폭력대화도 배우고 사티어도 배우고, 많은 노력을 했다. 나는 이제 많은 것을 알며 많은 것을 떠나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미진하다.
지금 와서 깨달은 것은, 20대의 나에게 '사회구조'였던 것이 지금은 '나의 과거'로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히 구조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구조를 해결해야 내가 풀린다. 그제서야 나는 자유롭다.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나는 자유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으므로, 나는 지금 자유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 것이다.
내가 지금 자유롭지 않은 것은 내가 지금 아이를 키우는 일에 얽매여있기 때문인 줄로 알았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가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지 못 하기 때문인 줄로 알았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내 머리로 생각하기에,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나의 과거의 실들을 다 풀어 새로운 청사진을 완벽하게 그려내고, 그것을 내 아이에게 제대로 적용하는 성공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완전 J(MBTI 성격유형의 '판단형')다!'라고 남편은 말했다. '모든 것이 T T T T가 되지 않고서는(F가 하나라도 있으면) Then을 실행할 수가 없는거네.' 그렇다. Then이 무기한으로 연장되는 것이 나의 큰 단점이다.
나의 도그마를 버릴 수 있을까? 나의 어린시절에 대한, 최선의 양육방법에 대한 '답'을 내지 않고서도 나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과정에서만으로도, 길을 가는 발걸음으로만으로도 기쁨을 누리는 자연스러움을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를 보면, 레고만 하면서도 그림만 그리면서도 행복하다. 그 아이에게는 '버리는 시간'이라는 것이 없다. 모두가 의미가 있다. 나는 아이가 너무 부러운데, 아이를 멘토로 삼아볼까?
2011.9.5. 아이의 다섯번째 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