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듬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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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막지하게, 무자비할 정도로, 소름끼치도록, 이 세상것이 아닌듯이 음악

나는 예전에는 내 목소리가 너무 뻔하다고, 심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전형적인 여성성을 여성에게 강요하는 사회가 싫었고 그래서 나의 여성성을 뻔하게 팔아먹기 싫었다.


달콤하게, 가녀린 척하는 팝보컬은 정말 싫었다. 우는 소리 하는 알앤비도 무척 싫고. 그렇다고 거칠게 내지르는 락보컬은 아무리 강해봤자 남자들을 못 따라가기도 하고, 너무 목소리가 금방 상하기 때문에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재즈 역시 취향이 아니기도 했지만(나는 정박취향. 말하자면 클래식 기반이다.) 내 목소리가 원래 맑고 고운 게 특징인데 그걸 다 갈아버리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내 장점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크렌베리즈를 들었을 때 충격이었고, 그 해법을 따라갔다. 즉슨, 조금 성악적인 발성을 하면서 약간의 디스트를 거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목도 안 상하고(아직 젊은 20대에는) 그 여성성이 뻔하게 들리지 않고 좀 독특하게, 엣지있게 들린다.


그렇게 락밴드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애를 낳고 나니 사람이 바뀐 것인지 그냥 나이를 먹어서인지 암튼 나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좋다. 게다가 나이는 40대인데 목소리는 20대(내지는 30대 초반까지 가능)인 이 놀라운 유전자의 힘을 새록새록 느끼는 요즘, 나의 맑고 고운 목소리야말로, 그리고 완전 고음 가능함이야말로 나의 강점이라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고 있다.


그래서 그냥 힘을 빼고, 엣지를 만들지 않고 그냥 부르기로 했다. 내 목소리에는 엣지가 없지만 나의 노래 속, 표현에는 엣지가 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 (엣지를 주기 위해 목에 힘을 주면, 고음이 안 올라간다는...)


이제 더 이상 나는 나의 여성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무지막지하게 달콤하게, 무자비할 정도로 가녀리게 불러주겠다. 그리고 소름끼치도록 투명하게, 이 세상것이 아닌듯이 높게.


그것이 나의 새 전략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 인생 아는 여주 음악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는 흥미롭다. 보통 진지한 오페라들은 선남선녀, 즉 잘 생긴 미혼남녀들이 주인공인데, 노르마는 애가 둘이나 딸린, 사랑이 변할 만큼 변할 충분한 시간이 흐른 커플이다. 남자쪽이 이미 사랑이 식어서 다른 여자를 좋아하면서 극이 시작된다. 철모르는 어린애들이 아니다. 인생 좀 아는 커플의 심각한, 그러나 비극이다.
 

그리고, 노르마가 권력을 가진 사제라는 점도 흥미롭다. 상대 남자도 로마의 총독이긴 하지만, 노르마의 권력은 속세의 군대를 이끄는 백발 성성한 아버지도 딸인 노르마의 계시만 기다리는... 게다가 적군의 장군과 사랑을 나누면서 애를 둘이나 낳아서, 아무도 모르게 키웠다는 점도... 범상치 않는 여자다. 보통 오페라의 청순가련형 여성과는 정말이지 은하수만큼이나 멀고 먼 거리가 있다. 재미있게도 딱 청순가련형의 여성이 극에 한 명 나와주기도 하는데, 그 여자는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가장 엄청난 것은 변심한 남자 때문에 열받는다고 전쟁을 소집하는 장면... 아무리 본인의 목숨도 내놨다지만... 정말이지 다른 모든 오페라의 생떼쓰는 남자들의 레벨을 뛰어넘는... 엄청난 여자인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 여자는 사랑을 잃고 목숨을 저버리는,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선택을 하며, 그 과정에서 연적이 되는 아달지사와 놀랍게도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두 여자가 서로 양보하는 말도 안 되게 고결한 이중창 '보세요, 노르마.'(Mira o Norma)와 마지막의 '당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이제 아나...' 하는 노르마와 남주의 장면이다.


보통은 오페라의 여자 주인공은 소프라노가, 남자 주인공은 테너가 맡으며 바리톤이나 베이스, 메조소프라노 중에 한명은 그 둘을 훼방놓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인물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오페라는 안 그렇다. 문제의 변심한 남주인 테너, 그 사람만이 문제이며 사랑의 연적인 아달지사는 고결하고 순수한 심성으로 노르마를 깊이 신뢰하고 따르는 여자라서, 그리고 노르마 역시 훌륭한 인격의 여자이기 때문에 그 둘은 서로 싸우는게 아니라 서로 양보하며 위로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상대의 기쁨과 고통과 모든 것을 아는 여자들의 공명을 둘의 이중창 장면에서 느낄 수 있다. 정말 아름답다. Mira o Norma 외에 1막의 O arimmembranza!도 정말 기가 막힌다.

 

그리고 재미나게도 보통은 노르마를 소프라노가 아달지사를 메조소프라노가 맡지만 맨처음 초연엔 노르마가 메조소프라노이고 아달지사가 소프라노였다고 한다. 벨리니가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주디타 파스타를 위해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주디타 파스타가 소프라노라고도 하고. 뭐랄까 마리아 칼라스 같은 인물이였을까? 메조소프라노지만 콜로라투라 영역까지 음역이 높은?(아마도) 그리고 소프라노 둘이서 노르마와 아달지사를 맡는 일도 꽤 있었다. 재미있게도 몽셰라 카바예는 젊어서는 (조안 서덜랜드가 노르마일 때) 아달지사를 부르고, 나이 들어서는 노르마를 부른다.


요즘의 바르톨리의 노르마 음반은 옛날처럼 메조소프라노인 바르톨리가 노르마를, 소프라노인 조수미가 아달지사를 맡았는데, 매우 말이 되는 하모니를 보여주고 있다. 파워있고 드라마틱한, 원숙한 노르마 역에는 바르톨리가 딱이고, 청순하고 고결한, 젊은 아달지사의 역에 조수미의 청순가련한 목소리가 그냥 딱이다. 실제로는 조수미가 바르톨리보다 몇살 더 많지만 말이다. 조수미의 청순가련형의 성공은 어쩌면 그 역할이 로맨스가 아니라 우정이라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원래 감정표현이 풍부하지 않은 편이라. 그래도 코믹 연기는 참 끝내주시는데)


디미트라 테오도슈의 디비디를 먼저 봤는데, 정말 테오도슈도 훌륭하고 꽤 재미있게 봤지만 테너가 좀 박력이 안 나와서 아쉬움을 느꼈고, 무대도 약간 어색하긴 했다.


그래서 고클에서 숭상하는 몽셰라 카바예의 그리스 야외극장 공연을 한참 기다려 아마존에서 공수받아서 보았는데... 정말이지 멋진 공연이었다. 테너도 박력있고 훌륭하고, 무대와 합창단, 카메라 워크까지 전체적으로 아주 매끄러운 전개로 지루함 느낄 새를 안 주는 대단한... 시작부터 박력있게 서곡을 열며 나오더니 노르마의 '정결한 여신'에서 따악 모아주며 끝나는... 엄청난 공연이었다. 이렇게 박력있는 시작 아직 못 본거 같다.

 

내가 아직 오페라를 많이 못 보긴 했지만, <청교도> 보고는 벨리니가 그런가부다...하고 느릿느릿한 전개와 억지스러움들을 참고 그 아름다운 선율만을 선택적으로 들어야하는게 벨리니인줄 알았는데 왠걸, 완전 멋진 전개... 베르디보다 더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 <노르마>는 그렇다. 정말 극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완벽하게 짜여있다.

정말이지 벨리니가 요절만 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노르마보다 더 끝내주는 작품들이 나왔을지도... 아쉽다. 작곡가는 오래 살아야 한다. 베르디를 보라! 나도 70대의 전성기를 목표로 열심히 몸 관리하고 머리 관리하고 노력하고 있다.^^;


디미트라 테오도슈의 디비디가 한국출시라 알라딘에서 쉽게 살 수도 있고 우리말 자막도 있어서 처음 보기엔 좋으나 영어 자신있는 분들은 카바예로 직행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노르마의 지존은 역시 마리아 칼라스! 그러나 몽셰라 카바예의 노르마 역시 아주 훌륭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칼라스의 노르마 공연을 볼 수가 없다. 음반을 들으며 상상할 뿐이다. 그리고 나도 예전엔 마리아 칼라스의 그 카리스마에만 압도되어서 무조건 숭앙했었으나 카바예의 그 사람의 가슴을 막 녹이는 꿈결같은 부드러운 소릿결은 정말이지... 그 부드러움이 강인한 노르마의 카리스마와 결합되었을 때의 아우라는 굉장한 것이다!


Maria Callas Casta Diva from Norma by Vincenzo Bellini
https://www.youtube.com/watch?v=MhHqwwT02JM


Montserrat Caballe "Casta diva" Norma Orange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FIQQv39dcNE


Because, she is the memory. 왜냐하면, 그는 기억이기 때문에. 음악

Because, she is the memory.
왜냐하면, 그는 기억이기 때문에.

Balacing is important when you sing a song. You should dive deeply in the song, find and meet the speaker's soul, and share your body and soul with her.

노래를 부를 때는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그 노래 깊숙이 들어가 화자를 찾고, 만나야 한다. 그리고 나의 몸과 영혼을 그와 나누어 써야한다.


And then let her speak through you, show her soul to the audience and let them feel her. It is like an actor do with his character in the film.

그리고 나를 통해서 그가 말하게 한다. 그의 영혼을 청중에게 보이고, 느끼게 한다. 이는 마치 영화 속의 배우가 자기를 통해 인물을 드러내는 것과 비슷하다.


But when the song is over, you should come back to yourself. You should keep yourself actually, when you are singing and absorbed in the song. You should not sink in your feelings too much.

그러나 노래가 끝나면 우리는 나 자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실은 노래 부를 때, 그 속에 완전히 빠져있을 때도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 자신의 감정 속에 너무 많이 빠져있으면 안 된다.


If you use out all of yourself, you will be exhausted or lose yourself. If you become a mad woman, and you remain as she, and then you become a dieing woman, and you should be dead? You are aparted and it will be very hard for you to bear it. Balancing is important.

만약 나를 다 써버리면, 우리는 고갈될 것이고 나 자신을 잃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미친 여자가 되었을 때, 그대로 남아있는다면? 만약 죽어가는 여자가 되었을 땐, 그후에 나는 죽은 사람이 되는건가? 나는 분열되고, 그 상태를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균형잡기란 중요하다.


Yes. In fact many sopranos don't touch it at all, and just pass away. They just sing with themselves and their technics, so it's gonna be often important who she is. When she is wonderful woman, of course it has meanings. But I don't like that way. I want more.

실은, 많은 소프라노들은 그것을 건드리지도 않고 지나간다. 그들은 단지 자기 자신과 테크닉만을 가지고 노래하며, 그래서 그들이 누구인가가 종종 중요해진다. 만약 그들이 멋진 여성이라면, 물론 노래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식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좀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


On the other hand, some pop singers lose themselves, sinking and sinking deeply to be nearly drowned. It is not good either. Cause it could hurt herself of course and even the audience sometimes.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팝가수들은 감정 속으로 빠져들어가 거의 익사직전까지 가고, 자기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도 역시 좋지 않다. 왜냐면 이는 자신을 해할 수 있고, 어쩔 땐 청자마저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You should keep yourself. Because, she is just the memory. We human beings live by memories often but who lives is you, not her.

우리는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 왜냐면 화자는 단지 기억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인간은 기억에 의해 살아가지만 살아가는 것은 나이지 그가 아니니까.


애를 낳을 것인가? 육아

이 문제는 결국 여자 본인의 판단이지 부모도 남자도 사회의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선택이다.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 불평등한 나라에서, 나이는 점점 먹어가는 내가, 이 일을 할 것인가?

일단 할까 말까를 결정하기 전에 그 일의 규모를 미리 말씀드리자면, 언제나 상상한 것 이상이다. 애를 낳아 키워보기 전에 남들을 보고 얘기를 듣고 한 것으로 상상한 것보다 당해보면 훨씬 어렵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되면 어느 정도 나아지겠지, 하는 예측이 빗나갈 때, 너무 큰 좌절을 오랫동안 견뎌야 한다는 점이다.


애 키워본 지 오래 된 여성의 말일수록 실제 있었던 고난과 고통보다는 줄여서, 아름답게 윤색해서 말한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나이 드신 여성분들이 (애들이 어렸던) 그때가 좋았지, 하는 것은 그때가 별로 안 힘들어서가 아니라 본인이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아직 희망도 있고 뭐도 있고 뭐도 있는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타당하다. 힘든 일들은 벌써 다 잊어버리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십년 정도 지나면 아무리 강한 경험도 한두 줄로 요약이 될 뿐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자. 그렇게 많은 날을 학교에 갔는데도 돌아보면 생각나는 건 몇 개 안 되는 추억뿐이다.


예측을 벗어난다는 것은... 나의 경험인데 첫애를 낳으면서 남들이 3년은 나 죽었다, 생각하고 묻어야 한다고 했으니까 나도 3년은 각오를 하자, 하면서도 처음 1년은 아마 진짜 힘들겠지, 하지만 그 다음 2년째는 좀 낫겠지, 슬슬 준비를 시작해서 3년째부터는 내 일도 파트타임으로는 할 수 있겠지 뭐 그런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했었는데, 첫 1년은 예상 대로(예상보다 더) 힘들었어도 각오한 바가 있어서 잘 견녔지만, 2년째에 이르러, 이제 애도 좀 크고 내 몸도 좀 살만해졌는데도, 남는 시간들이 생겨나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말하자면 멀쩡하게 놀고 있는 손발과 머리로 대기를 타야하는 시간들을 견딜 수 없었던 것;;; 정말이지 마음이 힘들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든 견디기 위해 인터넷 쇼핑이나 좀 하고... 다행히 나는 불면증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는 사람이라서 그래도 책 읽고 글 쓸 시간이 조금 있었고 새벽 운동을 할 시간이 좀 있었다. 그래서 생존했다. 뭉텅이 시간이 필요한 본격적인 일은 그냥 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하는 일 없이 노닥거리는 능력이 더 없이 필요한 시기다. 나는 그런 것이 영 체질에 안 맞아서, 노닥거리는 것도 티비 보는 것도 싫어하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서... 매우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 많은 여자들이 이미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일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몸과 마음이, 기대치와 포기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결혼 3년차, 2살짜리를 키우는 여자의 힘과 기대와 포기상태와 결혼 10년차, 둘째를 낳아서 키우는 여자의 힘과 기대와 포기 상태는 많이 다르다. 적절하게 힘이 있고, 적절하게 미래를 기대하며, 적절하게 포기하고 현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이를 잘 키운다. 그 과정에서 아무래도 포기가 안 되는 사람, 아무래도 힘이 딸리는 사람, 앞날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많이 힘들다. 아주 많이 힘들다.


나의 경우는 불평등함을 참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현재형이다. 아직도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은 평등할 수가 없다는 것.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 애를 낳으면 절대로 평등할 수가 없다. '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지.'하는 이상은 이 곳에서는 완벽하게 뒤집어진다. 남자가 저질러도 책임은 여자가 진다. 여자가 저질러도 책임은 여자가 진다. 왜냐면 애를 가지고 낳는 사람은 여자이며 어린 아기를 키울 사람 역시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평등이 싫다고 여자가 거부하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게 된다. 누군가가 희생하고 정성을 쏟아주지 않으면, 아이는 잘 자랄 수가 없다. 관심을 못 받은 만큼 병이 든다고 보면 된다.(그래서 친정 엄마 시어머니가 애를 키워주는 여자는 '신의 딸' 그런 얘기가 나오는거다.)


나는 '평등하게 가사와 육아를 나누려고 하는' 요즘의 젊은 남성들의 의지가 어디까지 남자의 변신을 가능하게 할 지 잘 모르겠다. 일단은,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고, 원래부터가 '가정적' 혹은 관계의 기술이 뛰어나고 집안일 하는 능력이 기본으로는 장착이 되어 있어야 성공적으로 반분은 못 되더라도 뭐 그나마 살만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본인들이 잘 하고 싶어도 이렇게 환경이 안 좋으면 참 잘 하기 어렵다.


운이 좋으신 분들은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서 그럭저럭 행복하게 애를 낳아 키울 수 있다. 이 놈의 사회가 지금보다 많이 정상화된다면 말이다. '여자에게 잘 해주는 남자'가 최고라고들 결혼한 여성분들이 얘기해도, 처녀들은 듣지를 않는다. 멋진 남자,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나도 결혼한지 십년을 넘고 나니 아, 나한테 잘 해주는 남자가 최고구나, 싶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고;;; 아마도 이 미래를 미리 안다고 해도 내가 그 시기로 다시 가서 '가정적인', '나한테 잘 해주는' 남자를 골라 결혼할 것 같지는 않다.


사랑하는 남자인지, 나한테 잘 해주는 남자인지, 아니면 조건이 좋은 남자인지;; 의견이 분분한 것 같지만 십년 넘게 살아본 나의 의견은 이렇다. 사랑이 없으면 결혼을 하면 안 된다. 왜냐면 결혼은 특히나 한국사회에서 하는 결혼과 양육은 굉장히 힘든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사랑 없이 했다가 그 어떤 증오의 관계가 될지 모르는거다. 사랑해서 해도, 십년씩 애 키우느라 허덕이다 보면 있던 사랑이 다 어디로 새어나가 버린다. 실은, 대개 십년까지 가지도 않는 것 같다. 사랑의 호르몬은 4년이면 끝난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냥 4년을 사귀는 것과 아이를 같이 낳아 키우는 것은 천지차이다. 아주 진하고 깊은 감동과 처절한 고통, 길고 긴 시간 동안 이어지고 변화발전 퇴락과 재생을 거듭하는 아주 희안한 관계이다. 아이는 부부를 결속시켜주지만, 동시에 커플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다 갖다 육아에 쓰도록 만들기 때문에(이 놈의 나라는 필히 그러하다.) 정말 의식을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을 유지하기가 힘든 것 같다.


사이 좋게 손 잡고 다니는 노부부의 환상을 우리는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들한테 그 마음 속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다니시는 분들은 남편이 젊었을 때 아주 크게 잘못을 해서 속죄를 하느라 손잡고 다니시는 거라고 한다. 내 생각엔 오래된 커플일수록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많아져도 어차피 갈라질 게 아닌 이상 앞에 있는 상대에게 너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얘기하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니까 그냥 사는게 아닐까 싶긴 하다. 하지만 모르는거다... 안 살아봤으니.


아무튼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여자는 일단은 행복한 여자다. 아직 낳지 않았으니까. 정말 축하를 드리고 싶다. 본인의 인생을 더 진실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선택의 기회를 지금 갖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나라꼴이 좀 제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으니까 몇년 더 관망해보고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아주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얘기하지만 사회환경이 좋으면 그럭저럭한 남자를 만나도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 수가 있지만 사회환경이 지금과 같이 아주 안 좋으면 상위 10% 정도의 (경제 아님. 인격 등등 조건) 훌륭한 남자를 만나도 쉽지 않다...(물론 불가능이란건 없지만..)


지금보다 얼마나 더 좋아지면 애를 낳을 수 있을 것인지, 조목조목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8시간 노동과 칼퇴근, 쌍방 육아휴직이 얼마나 지켜진다면 가능할지, 나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면 양육비 정부보조금이 어느 정도면, 미친듯이 돌아가는 사교육 광풍이 어느 정도나 해소가 되면 나의 애가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을지.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애를 키우고 나서 내 영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을지, 나의 육아 적성, 가사 적성은 어느 정도일지, 무엇보다도 중요한 나의 체력과 정신력은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고 또 유지하고 키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남자와 결혼할 것인지도.


아니, 결혼은 사랑하는 남자와 하는 거라며? 그렇다. 그러나 어떤 남자와 결혼할 것인지는 조정 가능하다. 내가 어떤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지, 왜 사랑에 빠지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싸우고 있는지를 공부한다면, 충분히 조정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번 글을 기다려 주시압.


물론 애를 낳으면 좋은 점도 있다. 그것도 다음에. 사회가 요모양 요꼴이 아니고 북유럽 정도만 받쳐주어도 애를 낳는 것은 인생의, 특히나 여자 인생의 큰 축복, 순수한 축복이 될 것이다.


애를 언제 낳을 것인가?




루크레치아 보르자: 어머니, 당신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음악

도니제티의 오페라 <루크레치아 보르자> 디비디를 보았다.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파올로 브레슬릭의 2009년 뮌헨 공연이다.

Com'e bello(얼마나 아름다운지!)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끌리게 된 오페라다.

나이 많은 그러나 아직은! 아름다운 귀부인이 아름다운 강가에서 천연스레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청년의 아름다운 자태에 마음이 끌린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완벽하게 자신을 사로잡는 이상형을 만나 기뻐하고, 빠져들지만 그가 깨어나 자기를 볼까 두려워한다. 어쩜 이렇게 나이 먹은 여자들의 마음을 잘 꿰뚫고 있나! 나이먹은 여자가 주책이다 라는 소리만큼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것이 (본인 생각엔) 생각보담 괜찮은 나이 먹은 여자의 심정. 이 오페라 왜 한국에 안 들어오나 싶다. 중년 여성들에게 매우 인기있을 것 같은데.

Com'e bello! Quale incanto
In quel volto onesto e altero!
No, giammai leggiadro tanto
Non sel pinse il mio pensiero.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매혹적인지!
이 정직하고 기품있는 얼굴.
지금껏 그 누구도 이토록 아름답게
내 마음을 꿰뚫은 적이 없다.


L'alma mia di gioia e piena,
Or che alfin lo puo mirar ...
Ma risparmia, o ciel, la pena
Ch'ei debba un di sprezzar.


내 영혼이 기쁨으로 가득 차오른다.
이제야 그를 볼 수 있게 되다니!
내 번민을 사하소서, 하늘이여!
일말의 경멸도 받지 않도록!


다행히! 소프라노가 꿈결 같이 아름다운 아리아를 부른 후 잠에서 깨어난 청년은 귀부인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을 고백한다. 날 놔달라!고 하면서도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는 기뻐하는... 중년 여인.

보통 오페라 하면 일단 그 노래 실력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이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는 배불뚝이 테너와 역시 나이를 속일 수 없는 소프라노가 등장하여 젊은이들의 역을 하는 것을 좀 아쉽긴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이 오페라는 다르다. 그럴 수가 없다. 반드시 잘 생기고 젊은 테너가 나와주어야 잠든 젊은이를 바라보며 나이든 여자가 망상을 갖는 장면을 개연성있게 연출할 수가 있다. 왜냐면, 이것은 보통의 성역할에서는 보지 못했던, 즉 관행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레슬릭은 너무나 개연성이 있는, 젊고 잘 생기고 반짝이는 금발이 여자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심지어 몸매까지 완벽하신... 미모를 갖추고 있어서... 그의 미모를 믿고 연출가가 상체탈의씬을 밀어붙인게 아닐까 싶다.(근데 나는 좀... 좋기는 하지만 좀 많이 민망하다.) 그루베로바가 좀 많이 나이들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설정상 뭐,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굉장히 멋진 커플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 거침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바로 자기의 아들인 것!

왜 그가 여자의 가슴을 정통으로 맞춘 이상형이었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나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분신이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루크레치아 보르자라고 하면 희대의 미녀로 소문난 여자. 그 여자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교황의 딸, 그 유명한 체사레 보르자가 그 오빠다. 그 미모의 여동생을 권력투쟁에 이용해 먹기 위해 체사레 보르자가 그녀의 첫번째 혼인을 무효화하고, 또 그녀가 낳은 사생아를 어디로 보내버리고 그 아비로 추정되는 혹은 올가미를 씌운 남자를 죽이고서(그 아비가 실은 체사레 보르자라는 설이 좀 막강하다...) 그녀을 막강한 가문에 시집 보내고, 가문이 기울자 그 남편을 독살해버렸다는... 그래서 남편을 잃고 마지막으로 시집간 것이 아마도 이 오페라의 남편으로 나오는 알폰소 데스테 공작이다. 원래는 마지막 남편과 잘 살다가 아기를 낳다가 죽었는데, 빅토르 위고는 허구로 아들을 등장시켜 비극을 만들었고 그의 희곡을 원작으로 도니제티가 오페라를 만든 것이다.

계급도 가문의 원수도 뭐도 안 나오는, 왠 근친상간 스토리? 핵헐... 선입관과는 달리 극이 상당히 재미있다. 내가 그루베로바와 브레슬릭의 공연을 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프롤로그에서 남주와 여주가 처음 만나고 사랑의 이중창을 부르는 대목도 정말이지 멜로디도 아름답고 극도 재미있지만, 1막에서 여주의 남편이 젊은이를 질투하며 어떻게든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하는 대목도 정말 상당히 재미있다. 공작과 공작부인의 불꽃 튀기는 대결도 그렇고,(내 전남편들이 어떻게 하다가 죽었나 생각해 보라는 둥이라든가;;) 첫눈에 반한 여인이 맙소사 친구들의 원수인 그 유명한 루크레치아 보르자라는 것을 알고 난 후의 제나로의 행태도 참 재미있는 것이 딱 반항하는 사춘기 아들 같다. 어떻게든 빼내주려고 애쓰는 공작부인의 노력이 무색하게 자기는 거짓말을 못한다며 자백을 계속하는 대목도 참... 어이없지만 매우 말이 되는 장면이다.

주인공인 두 사람 외에도 오르시니도 매우 멋지다. 메조소프라노라서 여자지만 반할 거 같은... 넘 파워 있으심. 그리고 남편인 공작도 굉장히 재미있는 캐릭터다. 사실 이 비극이 진행되는 것도 본인들은 아무 일도 없는데- 근친상간 근처에도 안 갔는데- 질투에 불타는 남편 때문에 사달이 난 것. 질투도 참 귀엽게 하신다.

그리고... 노래가 정말 아름답다. 도니제티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도 보면 그런데 아름다울 때는 무지막지하게 아름답다가도, 거칠어지는 장면에서는 또 무자비하게 찌그러뜨려 버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완벽하게 아름다운 벨리니와는 느낌이 꽤 다르다. 아무튼 루크레치아의 Com'e bello도 제나로의 Di pescator ignobile(미천한 어부의 아들로)도 둘이 같이 부르는 사랑의 이중창 씬 전체가 몽땅 다 혼절할 듯 아름답고 오르시니의 축배의 노래인 Il segreto per esser felici(행복해 지는 비결)도 질투하는 남편의  Vieni, la mia vendetta!(복수여 나에게 오라)도 정말 훌륭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도.

이 극의 참으로 비극적인 점은 바로 남자들의 권력암투의 희생양이었던 루크레치아 보르자가 그 보르자 가문의 법칙을 내재화해서 자기를 모욕한 자들, 기실 보르자 가문의 암투의 피해자들을 응징하고 안위를 확보하려고 하는데, 그 와중에 자신의 아들까지 희생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보면서 참 안타까운 것이, 내가 니 엄마다 한 마디만 해줬어도 아들을 무사히 피난시킬 수 있었을텐데 마지막에, 아들의 죽음 직전에 가서야 사실을 말하는 그 여자의 아집이다. 그것은 아마 그녀의 트라우마일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선택한 것은 아니다. 정말이지 안타깝게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젊은이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는 걸 깨달았지만 차마 사실을 이야기하지 못 하고, 이대로 헤어지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아들의 친구들이 온통 죽은 전남편들의 가족과 친지이다.;;; 그때야 경황이 없어 그랬다지만 이후 진행되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사실을 이야기해주지 않고 위험한 소굴-페라라로부터 아들을 떠나게 하기만 하면 될거라는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고, 이 젊은이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본적 없는 엄마를 그리워 하며 자란 그에게 친구들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를 못 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테너의 마지막 아리아가 정말 끝내주는데, 나는 이 장면을 그루베로바와 브레슬릭 버전에서만 보았고 유투브에 있는 다른 공연들에서는 생략이 되어있었다.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최고로 끝내주는 장면인데 말이다. 다 죽어가던 사람이 노래 한 곡조 뽑고 가는게 오페라에서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Madre, se ognor lontano visi
al materno seno,
che a te pietoso Iddio
m'unisca in morte almeno.
Madre, f'estremo anelito
ch'io spiri sul tuo cor 

어머니 우리는 멀리 떨어져
저는 당신 품을 알지 못 하고 컸지만
자비로우신 신은 우리를 죽음에서만큼은
함께하게 해주셨어요
어머니, 당신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쉬어도 될까요?

원망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는, 순수한 기쁨이라고 나는 확신한다.(슬픔조차 아니다.) 왜냐면, 자식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었다. 최초에는.

무조건적인, 절대적인 사랑은 먼저 어머니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먼저 아기에게서 나온다. 정말? 우리가 지금껏 들어온 어머니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읊어대는 모든 가락은 나이먹은 남자들이 생산해낸 글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스스로 엄마였던 사람의 시각이 훨씬 정확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겠지만.

벌써 십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나의 태어난 지 몇 개월 안 된 아들이 자다 말고 엄마! 하고 소리쳐 부르던 순간을 기억한다. 안방에 아이를 재워놓고 나는 부엌에서 이제 좀 마음을 놓고 식은 미역국에 밥을 먹고 있던 중이었다. 그 와중에 어두운 방 안에서 날아온 외침에 나는 가슴을 찔렸다. 그때 비로서 나는 엄마가 된 것이다.

아기의 절대적 사랑이 엄마의 절대적인 사랑을 생겨나게 한다. 아기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왜냐면 엄마는 아기의 삶을 위한 모든 것, 삶 자체와 거의 등치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직 분화되지 않은, 생존본능과 분화되지 않은, 막연하지만 막강한 감정이다. 그래서, 그 사랑이 위태로운 듯 느껴질 때 아이는 전심전력을 다해 그 사랑을 지켜려고, 얻으려고 한다. 우리가 가진 수많은 정신병들과 그보다 사소하지만 고쳐지지 않는 버릇들은 상당수가 어려서, 8살 되기 전에 생긴다. 그 사랑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조금 나빠지고 조금 억울하고 그런 것쯤은 다 무시했던 것이다.

그 강렬한 사랑은 오랜 시간을 같이 살면서 한 독립된 인간으로 커가는 와중에 무뎌지고 잊혀지고 많은 다른 것들로 대체가 된다. 보통은. 그러나 이 젊은이의 경우는, 나폴리의 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자라나다가 어느날 자기의 어머니가 귀부인이고 권력암투의 희생자로서 자기를 멀리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알게 된 이후 어머니를 완전 숭배하게 되었고, 그래서 다 큰 젊은이인데도 그 사랑은 아주 강렬한 형태로 남게 되었다...고 추정해 본다.

마지막 남주의 죽음씬은 테너도 정말 잘 하지만 연출이 진짜 끝내준다. 처음 루크레치아를 만날 때 홀딱 반해 버린 제나로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제가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단 한 명, 아직 본 적 없는 어머니에 대해 고백하는데 이 때 그는 천진무구한 소년 같은 몸놀이를 한다. 그리고 죽어가면서 다시 그는 그 위태위태해 보이는 몸놀이를 하는데, 그립던 어머니와 드디어 만난 그가 보이는 천진한 기쁨이자 바라보는 사람에게 몹시 애처로움을 자아내는 몸짓이다. 무대 뒤쪽으로 멀어져가는 모습이 하늘로 날아가는 그의 영혼 같기도 하다. 이 장면은 루크레치아와 제나로의 첫만남과 끝, 둘의 모든 기쁨과 슬픔, 기대와 절망, 사랑을 담고 있다.

정말 끝내주는 연출이다. 내가 오페라를 많이 보지는 못 했지만 이렇게 엄청난 연출을 아직 본 적이 없다. 잠시 묵상...

Com'e bello 노래 듣고 이 오페라에 마음이 끌리시는 분들은 꼭 그루베로바와 브레슬릭 버전으로 보시길 강추한다. 르네 플레밍 그런거 필요없다. 좀 현대적인 연출이라 나도 처음엔 약간 꺼려질까도 했는데 브레슬릭의 열연을 보고 나면 그런 마음이 다 사라지실 것이다. 실은 나도 그루베로바 때문에 선택했는데 보고 나니 결론은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테너를 기준으로 택해야 한다는...!

그리고 실은, 나도 음반은 몽셰라 카바예와 알프레도 크라우스를 샀지만 계속 듣다 보니 크라우스보다 브레슬릭이 훨 나아서...(크라우스는 너무 성숙한 남자같은 느낌이다. 미숙하고 열정적인 젊은이의 느낌이 부족하다. 미안해요, 크라우스!-0ㅜ;;)  극적인 표현도 너무 차이가 나서... 귀찮아도 유튜브를 애용한다.

Edita Gruberova - Com'e bello - Lucrezia Borgia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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