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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른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다 말고 말한다. 세연: 아까 오줌을 눟고 나니까 똥 생각이 나는거야. 그래서 (팔을 크게 흔들며) 똥이 푸지지지직 푸지지지직 나오는거야. 엄마: 훗, 이젠 엄마가 세연이한테 옛날 얘기 해주세요, 해야겠네. 세연: 응? 엄마: 세연이가 엄마한테 옛날 얘기 해주세요, 하잖아. 이젠 엄마가 세연이한테 똥얘기 해줘, 해야겠다. 세연: 그게 아니라, 오줌 눟고, 생각하고, 똥 나오는 얘기. 엄마: 그래? 그래. 오줌 눟고, 생각하고, 똥 나오는 얘기.
아이는 요즘 잘 때마다 엄마 옛날 얘기해주세요, 하며 호돌이와 스가왈라, 청이와 척이 및 온갖 즉시로 떠오른 것들이 나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나는 마치 내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메릴 스트립이 된 듯이 '뭐 나오는 얘기 해줄까?' 하며 이야기꾼의 자세를 가다듬는다. 때로는 심각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 이미 있던 남의 이야기를 리메이크하기도 한다. 무슨 얘기들이었는지는, 나도 졸렸기 때문에 잘 기억이 안 나기도 한다. 아무튼 아이는 옛날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자기가 얘기를 만들려고 하는 기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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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내가 몸이 안 좋다보니 애를 티비더러 봐주라고 하고 나는 뻗어있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작년 어느 때인가부터 올해 여름까지는 분명 토마스와 친구들이나 어쩌다 보고 아무리 많이 봐도 일주일에 합쳐서 한 시간을 넘지 않으며 한두달 안 보고 사는건 당연한 일이던 우리 아이가 결국엔 하루 종일 7, 8 시간을 내리 보는 티비 중독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뽀로로를 시시때때로 틀어대는 어린이 채널들이 죄가 많다. 전에 토마스를 볼 때는 스카이라이프 어린이 채널을 통털어 하루에 두어번밖에 안 했고는 주말에는 아예 안 했었기 때문에 나까지 토마스, 토마스 해댔는데도 중독의 우려가 낮았지만(토마스 외의 것은 뽀로로 외에는 낯설어서인지 거의 볼 생각을 안 했다.) 토마스는 안 온지 오래, 이제 뽀로로가 좋아지고 나자 아무때고 '엄마, 뽀로로 하나 안 하나 틀어보자' 졸라보면 워낙에 적중률이 높은 것이다. 일단 졸라보면 성공할 확율이 높으니 졸라볼 수밖에. 그러다가 티비 보는 버릇이 서서히 들어서 간혹 뽀로로 아닌 것들, 즉 선물공룡 디보라든가 빠삐에 친구들도 보곤 하더니 나중엔 얘들도 하면 꼭 보는 것이 되었다. 매니도 보고 밥아저씨도 보고 급기야는 전에는 좀 이상해서 기피하던 디즈니의 이상한 애들까지 다 보는 쇼파소년이 되었다.
애가 8시간을 내리 티비를 본 날 이후, 결국 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티비가 고장났다고 둘러대고 스카이라이프를 해지했다. 정말이지 서럽게 뽀로로를 찾는 아이를 하루 이상 견디는 것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그래서 만 하루만에 지상파로 EBS를 보여주었다. 처음 계획대로 며칠 지나서 뿌리가 뽑힌 다음에 지상파를 보여주면 좋았을 것을, EBS는 '교육방송'의 기치에 걸맞지 않게 하루에 애들 보는 프로를 아침 저녁으로 2, 3 시간씩 틀어대고 있었다. 애한테 져주다보면 그냥 2시간이 간다. 아직 자제심이 부족한 애들을 대상으로 정말이지 비교육적인 장사 아닌가 싶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뽀로로와 토마스 외에는 안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티비 너무 많이 보면 머리 아프고 머리 나빠지니까 걱정되서 안 되겠다고. 다행히 신문이 나를 도와주었다. 요즘 바빠서 쌓아놓기만 하고 통 볼 일이 없었던 신문을 아침마다 들여와서 펼쳐서는 딱 한 면 티비프로만 보고 뽀로로와 토마스 시간을 체크한 다음 접는다. 내가 다른 기사를 안 보고 티비프로만 보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육아는 정말이지 신비한 것이다.
다행히 며칠 하다보니 적응이 된 것 같다. 아이는 자기의 모토가 그냥 '티비 볼래'가 아닌 '뽀로로 볼래'였던만큼 내가 신문 펴서 지금은 뽀로로 시간이 아니다 하고 주장하면 반박할 논리가 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의지가 굳을 때, 그것은 언제나 통했다. 그 정성을 다해 남보기에 유난을 떨며 나쁜 것을 물리치며 키운 아이를 티비바보로 만들 위험에 한 발 들여놓았을 때, 나는 심각성을 깨달았고 의지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나는 애가 20분전까지 기억하던 뽀로로 시간을 막상 시작 시간에 잊었을 때, 이걸 얘기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ps- 티비 보는 버릇을 없애주려면 되도록 안 보고 며칠이 지나가야 좋을 것이다. 하지만, 좀 있다가 뽀로로를 찾으며 조를 것을 생각하면 괴롭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 한번 틀고 나면 또 보고 싶어져서 떼를 쓰기 때문에, 되도록 안 틀어주는게 정답인 것 같다. 며칠 지나고 나니 엄마의 의지가 분명하게 전달되었는지, 떼를 별로 안 쓴다. 내가 적절한 다른 제안을 하면 금방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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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에 물들은 우리 아이가 물질문명 주사를 맞고 연명하고 있는(아직 자아실현을 제대로 못 해서 할 수 없다.)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간다. 가서 피하고 싶었지만 아동용 소변기를 아이가 좋아하므로 아동층에 들렸다가 엘리베이터가 하도 느려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찾다가 장난감 가게를 마주치고 마는 것이다. 아이는 '저거 볼래' 하고 엄마는 '에라 모르겠다' 한다. 이제부터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다. 엄마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적절히 아이가 만질 거 다 만지고 볼 거 다 본 시점에 적당한 가격의 작은 것을 사가지고 떠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서 아이가 '나 이거 살래!' 하고 자꾸자꾸 맘이 가는 토마스 레일 커다란 박스를 잡으면 나는 예정된 대사를 읊는다. '그거 갖고 싶어? (일단 공감해주고) 그런데 그건 너무 비싼 거라 엄마가 못 사줘. 엄마가 돈이 많지 않아. (사정을 설명하고) 산타 할아버지한테 사달라고 하자.' (뻥이다. 산타가 엄마다. 일년에 한번쯤은 비싼거 사줄 재력 된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아직 어려서 엄마가 사줄 돈이 없다는 것도 설득력이 있고,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선물을 사다주신다는 것을 믿어준다. 단지 눈 앞에 있는 것만이 머리 속에 있을 뿐이고 갖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일뿐.
미니카나 토마스와 친구들, 최근에 등록한 공룡과 동물 모형들이 엄마의 비싼 카드다. 카드를 쓰고 싶지 않을 때는 여기는 너무 비싸니까 엄마가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사줄게나 맛있는 거로 돌파해보고, 이도저도 안 되면 애를 울리고서 떠매고 간다. 엄마가 체력이 되고 한가하면 정말이지 '잘 놀고' 나서 그냥 갈 때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장난감 가게 근처에를 가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아이는 장난감 가게를 안 보면 거의 생각을 안 한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사줬다고 하며 카즈딘 프로그램 하던 김에 거하게 람보르기니를 쐈었는데, 아이는 그때만 해도 아직 크리스마스와 산타할아버지의 개념이 크게 없었다. 올해는 어찌 될지. 이미 어린이날에 진짜 거하게 토마스레일도 사줬는데, 엄마랑 아빠보다 더 능력있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이 그보다 약소할 수는 없겠고. 물질문명에 물든 삶은 정말 돈이 많이 든다. 생일 선물도 애가 통 잊은 것 같기에 토마스 레일 생일 되면 할아버지한테 사달라고 하자 하고는 얼렁뚱땅 넘어갔는데, 그냥 넘어가볼까. 아직은 잘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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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한참 몸이 안 좋고 집안이 정신이 없어서 아이의 목욕을 많이 걸렀더니 다시금 목욕을 싫어하게 되었다. 남편이 아이를 헷갈리게 해서 휭, 하고 바지를 벗기니 아이는 화가 나서 죽어라 울어대었다. 얼른 내가 미안하다고 하며 바지를 입혀주었다.
남편은 그럼 지금 할까, 좀 있다가 할까 하고 물었다. 아이는 '삼십분만' 했고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시계를 보러 가서는 아직 '삼십분'이 뭔지를 잘 모르는 아이의 무지를 이용해서 5분도 되지 않아서 이제 삼십분 됐으니까 씻자, 했고 아이는 '응' 하더니 드디어 옷을 벗고 씼었다.
나는 남편의 기지에 감사했다.
ps- '선택의 여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남편은 말했다. 자꾸 엄마 아빠가 권하니까 반동으로 하기 싫다고 하는 아이의 마음을 돌리려면 할래 말래?가 아닌 이거 할래 저거 할래?의 선택의 여지가 필요하다. 자기 마음이 슬슬 하고 싶은 쪽으로 옮겨갔다 해도, 계속 안 한다고 하다가 갑자기 한다로 돌아서기에는 아이에게도 체면이 걸리는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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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택배를 참 좋아한다. 늘 아빠 앞으로 배달되는 아마존 책 상자를 먼저 열어보고 싶어서 안달을 해서, 결국 책 상자만큼은 아빠 오기 전에 엄마 재량으로 그냥 뜯어주게 되었다. 그 외에도 엄마한테 오는 옷과 책 상자도 만만치 않고, 또 세연이한테 오는 토마스! 상자는 정말이지 두근두근 기다려지는 선물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예전보다 더 택배가 늘었다. 전에는 인터넷 쇼핑이 왠말이냐, 옷만은 꼭 입어보고 사야한다는 주의였는데, 애를 갖고 나니 당장 임신복이 필요한데 입덧으로 어디 다니긴 힘들고, 해서 은근슬쩍 옷쇼핑의 길로 들어섰고, 애를 낳고 나니 수유티를 사야겠는데 당삼빠다 밖에 돌아다닐 여력은 극히 부족했으므로 본격 인터넷 옷쇼핑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것도 사보고 저것도 사보고 하다보니 이제는 사이즈가 2가지로 나온 치마 같은 것은 크게 고민 안 하고도 사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택배가 많이 온다. 결혼하고서 남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도 책 사는 일이 늘었다. 전에는 이거 살까 말까 꼭 필요한가 재곤 했던 것이 결혼 후에는 아마존에 비하면 미미한 금액인데 뭘 주저하랴, 하고 퍽퍽 사게 된 것이다. 고민하는 시간과 정력을 줄일 수 있어서 좋은 버릇인 것 같다. 서점에 직접 가서 살펴보고 사면 더 좋겠지만 결혼하니까 데이트를 안 해서 그런 데 가는 일이 큰 일이 되고, 애가 생기니 거의 불가능이 된다.
아무튼 나도 택배를 기다린다.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일들 속에 쳇바퀴처럼 돌고 있던 하루에 택배 아저씨가 짠~하고 나타나 기쁨을 주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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