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듬을 찾아서

binu8.egloos.com


포토로그


시부모가 가족인가 육아

요즘 시부모가 가족인가 며느리가 가족인가 손님인가 하는 논란들이 페북에 돌던데, 당연히 가족이 아니다. 한 20년 이상 같이 살면 가족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솥밥을 먹으며 같이 살아야 가족이다. 그래서 결혼한지 10년 넘으면 더이상 친정부모도 가족이라고 하기가 어색해진다.

그래서 부르는 말이 있다. '원가족'이라고. 친정부모와 형제들도 나의 '원가족'일 뿐, 시댁도 남편의 '원가족'일 뿐, 내 가족은 아닌 것이다. 내 가족은 배우자와 자식, 그것도 같이 사는 한에서만이다. 자식도 장성해서 멀리 살게 되면, 그것이 오래 되면 가족이라고 하기가 어렵게 된다.

섭섭할 수는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독립된 개인으로서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

2017.7.23.

결혼한 여자는 우파 그외

페미니즘의 이슈에 대하여, 결혼한 여자는 우파가 될 수밖에 없다. 중도우파냐 극우파냐 정도의 차이다. 왜냐면 결혼은 본질적으로 타협이니까.

페미니즘 좌파의 끝은 분리주의다. 왜냐면 여자는 남자가 없어도 후세를 이어가며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소수의 '사상이 바르며 용모단정한' 남자들만 있어도 사회가 유지, 번영할 가능성이 매우 있다. 아예 정자만 수입해와도 되기도 한다. 여성들만의 나라를 시기하고 파괴하려고 하는 적성국들의 방해만 극복할 수 있다면, 못 할건 없다.

그러나 온건 좌파는 여성이 남성과 정의롭고 평등한 관계를 맺는 세상을 꿈꾼다. 우리들 중 대다수가 이성애자이므로, 이런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긴 하다. 할 수 있어서가 아니고 하고 싶어서 하려고 하는 게 인생인 것. (애를 낳거나 결혼을 하기 전에는 꽤 가능한 듯이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페미니즘 극좌파의 꿈은 제대로 꾸어본 적도 없이 실종된다.

아마도, 기술발전이 훌륭한 섹스봇을 만들고 나서야 아마조네스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로맨스는 좀 부족하더라도 일단 만족스러운 섹스만이라도 가능하다면 남성본위의 사회에서 이탈할 여성들이 꽤나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아이를 낳게 되는 이유의 성립이다. 사랑말고 어떤 이유를 조달해낼 수 있을까?

2017.7.21.


영어로 말할 때 나는 그외

영어로 말할 때와 생각할 때, 나는 더 가볍고 확신에 찬 사람이 된다. 더 분명하게 내 마음을 알 수가 있고, 내가 왠지 부끄럽다거나 쓸데없이 미안하거나 한 마음이 없다.

아닐 때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밖에 없어서, 모호한 표현을 할 언어능력이 부족해서일까? 결과적으로 난 더 행복하고 자신감이 있다.
나는 중학교때 처음으로 영어를 배웠다. 그 시절의 유행에 따라 발음에 신경을 썼으나 발음에 컴플렉스가 있었다. 내가 배운 영어는 대학입시에서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한, 입시영어였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후에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놀던 시절, 홍대앞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의 대화는 달랐다. 그들은 나의 영작문이나 발음의 잘잘못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뜻에 귀기울였다. 우리들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과 취향을 존중하고 소통하기를 원했다.

나는 그들과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모든 지긋지긋한 한국적인 인습과 차별들에서 멀리 벗어나 새로운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즐거웠다. 더 단순하고 더 솔직하며 더없이 평등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그래서 나는 영어로 말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다. 영어를 잘 해서는 아니다. 지금은 단어 정말 엄청 많이 까먹었다. 그러나 불편만이 있을 뿐 두려움은 없다. 뭐 요즘엔 앱으로 금방 사전도 찾아볼 수 있으니까.

요즘 성악을 더 잘 하려고 이탈리아어를 배운다. 숨고에서 선생님을 구했는데, 무려 이탈리아어와 독일어가 모두 모국어인 엄청난 분이지만 한국어는 잘 못 해서 영어로 주로 수업하다 보니 3개 국어가 동시에 늘고 있다는^^;; 영어가 제일 먼저 늘었다. 혹은 복구하고 있다.

2017.7.20.

왜냐면 나의 여섯살 딸래미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육아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

왜냐면 나의 여섯살 딸래미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귀여운건 좀 그렇구... 어른이니까.


2017.7.20.

현존연습 그외

나는 해운대 해변에서 출발해 태평양을 가로질러 날아간다. 멀리 따듯한 열대의 하얀 해변에 다달아 오두막에 다가가니, 왠 퉁퉁한 하와이 남자가 만돌린인지 우쿨렐레를 치고 있다. 나를 보더니 '왔나?' 하고 고갯짓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차 한 잔을 주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나는 이야기 한다. 그는 내 얘기를 흥미롭게 듣고, 깊이 공감해준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현명해지셨냐고 묻는다. 그는 말한다. 예전에 자신은 아주 큰 바보였다고. 아주 큰 바보병이 깊어져서 죽을 때가 되니까, 그 병을 고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이 곳에 오고, 과거의 삶의 습관을 다 버리고 나니, 병이 나은 것을 알았다고. '저도 이곳에 와서 살면 병이 나을까요?' 그는 빙긋 웃으며 말한다. 당신은 큰 바보가 아니라서 여기까지 올 건 없고, 아주 가까운 섬만 가도 충분하다고. '그 섬이 어디 있죠?' 그는 나에게 낮은 나무 의자를 주었다. '이걸 어떻게 가져가죠?' '당신의 방에 이미 놓여있어요.'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의 오두막을 나와 떠났던 해변으로 돌아왔다.

나는 힘들 때 내 방 의자에 앉아 앞의 책상을 바라본다. 나의 과거들, 나의 미래들, 나의 현재가 보인다. 나의 바램들, 나의 고집들, 나의 땀들도 보인다. 나는 나를 느끼고, 지금을 바라본다. 나는 모든 '해야한다'를 내려놓는다. 나는 윗집에서 들려오는 더듬거리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시간도 그 무엇도 아까와하지 않는다. 나는 만족한다.

 

2017.3.29.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