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내가 몸이 안 좋다보니 애를 티비더러 봐주라고 하고 나는 뻗어있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작년 어느 때인가부터 올해 여름까지는 분명 토마스와 친구들이나 어쩌다 보고 아무리 많이 봐도 일주일에 합쳐서 한 시간을 넘지 않으며 한두달 안 보고 사는건 당연한 일이던 우리 아이가 결국엔 하루 종일 7, 8 시간을 내리 보는 티비 중독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뽀로로를 시시때때로 틀어대는 어린이 채널들이 죄가 많다. 전에 토마스를 볼 때는 스카이라이프 어린이 채널을 통털어 하루에 두어번밖에 안 했고는 주말에는 아예 안 했었기 때문에 나까지 토마스, 토마스 해댔는데도 중독의 우려가 낮았지만(토마스 외의 것은 뽀로로 외에는 낯설어서인지 거의 볼 생각을 안 했다.) 토마스는 안 온지 오래, 이제 뽀로로가 좋아지고 나자 아무때고 '엄마, 뽀로로 하나 안 하나 틀어보자' 졸라보면 워낙에 적중률이 높은 것이다. 일단 졸라보면 성공할 확율이 높으니 졸라볼 수밖에. 그러다가 티비 보는 버릇이 서서히 들어서 간혹 뽀로로 아닌 것들, 즉 선물공룡 디보라든가 빠삐에 친구들도 보곤 하더니 나중엔 얘들도 하면 꼭 보는 것이 되었다. 매니도 보고 밥아저씨도 보고 급기야는 전에는 좀 이상해서 기피하던 디즈니의 이상한 애들까지 다 보는 쇼파소년이 되었다.
애가 8시간을 내리 티비를 본 날 이후, 결국 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티비가 고장났다고 둘러대고 스카이라이프를 해지했다. 정말이지 서럽게 뽀로로를 찾는 아이를 하루 이상 견디는 것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그래서 만 하루만에 지상파로 EBS를 보여주었다. 처음 계획대로 며칠 지나서 뿌리가 뽑힌 다음에 지상파를 보여주면 좋았을 것을, EBS는 '교육방송'의 기치에 걸맞지 않게 하루에 애들 보는 프로를 아침 저녁으로 2, 3 시간씩 틀어대고 있었다. 애한테 져주다보면 그냥 2시간이 간다. 아직 자제심이 부족한 애들을 대상으로 정말이지 비교육적인 장사 아닌가 싶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뽀로로와 토마스 외에는 안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티비 너무 많이 보면 머리 아프고 머리 나빠지니까 걱정되서 안 되겠다고. 다행히 신문이 나를 도와주었다. 요즘 바빠서 쌓아놓기만 하고 통 볼 일이 없었던 신문을 아침마다 들여와서 펼쳐서는 딱 한 면 티비프로만 보고 뽀로로와 토마스 시간을 체크한 다음 접는다. 내가 다른 기사를 안 보고 티비프로만 보는 날이 올 줄은 정말 몰랐다. 육아는 정말이지 신비한 것이다.
다행히 며칠 하다보니 적응이 된 것 같다. 아이는 자기의 모토가 그냥 '티비 볼래'가 아닌 '뽀로로 볼래'였던만큼 내가 신문 펴서 지금은 뽀로로 시간이 아니다 하고 주장하면 반박할 논리가 딸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의지가 굳을 때, 그것은 언제나 통했다. 그 정성을 다해 남보기에 유난을 떨며 나쁜 것을 물리치며 키운 아이를 티비바보로 만들 위험에 한 발 들여놓았을 때, 나는 심각성을 깨달았고 의지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나는 애가 20분전까지 기억하던 뽀로로 시간을 막상 시작 시간에 잊었을 때, 이걸 얘기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ps- 티비 보는 버릇을 없애주려면 되도록 안 보고 며칠이 지나가야 좋을 것이다. 하지만, 좀 있다가 뽀로로를 찾으며 조를 것을 생각하면 괴롭기도 하다. 그래도 일단 한번 틀고 나면 또 보고 싶어져서 떼를 쓰기 때문에, 되도록 안 틀어주는게 정답인 것 같다. 며칠 지나고 나니 엄마의 의지가 분명하게 전달되었는지, 떼를 별로 안 쓴다. 내가 적절한 다른 제안을 하면 금방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