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듬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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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낳을 것인가? 육아

이 문제는 결국 여자 본인의 판단이지 부모도 남자도 사회의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선택이다.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 불평등한 나라에서, 나이는 점점 먹어가는 내가, 이 일을 할 것인가?

일단 할까 말까를 결정하기 전에 그 일의 규모를 미리 말씀드리자면, 언제나 상상한 것 이상이다. 애를 낳아 키워보기 전에 남들을 보고 얘기를 듣고 한 것으로 상상한 것보다 당해보면 훨씬 어렵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되면 어느 정도 나아지겠지, 하는 예측이 빗나갈 때, 너무 큰 좌절을 오랫동안 견뎌야 한다는 점이다.


애 키워본 지 오래 된 여성의 말일수록 실제 있었던 고난과 고통보다는 줄여서, 아름답게 윤색해서 말한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나이 드신 여성분들이 (애들이 어렸던) 그때가 좋았지, 하는 것은 그때가 별로 안 힘들어서가 아니라 본인이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아직 희망도 있고 뭐도 있고 뭐도 있는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면 타당하다. 힘든 일들은 벌써 다 잊어버리신 것이다. 무슨 일이든 십년 정도 지나면 아무리 강한 경험도 한두 줄로 요약이 될 뿐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자. 그렇게 많은 날을 학교에 갔는데도 돌아보면 생각나는 건 몇 개 안 되는 추억뿐이다.


예측을 벗어난다는 것은... 나의 경험인데 첫애를 낳으면서 남들이 3년은 나 죽었다, 생각하고 묻어야 한다고 했으니까 나도 3년은 각오를 하자, 하면서도 처음 1년은 아마 진짜 힘들겠지, 하지만 그 다음 2년째는 좀 낫겠지, 슬슬 준비를 시작해서 3년째부터는 내 일도 파트타임으로는 할 수 있겠지 뭐 그런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했었는데, 첫 1년은 예상 대로(예상보다 더) 힘들었어도 각오한 바가 있어서 잘 견녔지만, 2년째에 이르러, 이제 애도 좀 크고 내 몸도 좀 살만해졌는데도, 남는 시간들이 생겨나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말하자면 멀쩡하게 놀고 있는 손발과 머리로 대기를 타야하는 시간들을 견딜 수 없었던 것;;; 정말이지 마음이 힘들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든 견디기 위해 인터넷 쇼핑이나 좀 하고... 다행히 나는 불면증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는 사람이라서 그래도 책 읽고 글 쓸 시간이 조금 있었고 새벽 운동을 할 시간이 좀 있었다. 그래서 생존했다. 뭉텅이 시간이 필요한 본격적인 일은 그냥 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하는 일 없이 노닥거리는 능력이 더 없이 필요한 시기다. 나는 그런 것이 영 체질에 안 맞아서, 노닥거리는 것도 티비 보는 것도 싫어하는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서... 매우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 많은 여자들이 이미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일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몸과 마음이, 기대치와 포기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결혼 3년차, 2살짜리를 키우는 여자의 힘과 기대와 포기상태와 결혼 10년차, 둘째를 낳아서 키우는 여자의 힘과 기대와 포기 상태는 많이 다르다. 적절하게 힘이 있고, 적절하게 미래를 기대하며, 적절하게 포기하고 현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이를 잘 키운다. 그 과정에서 아무래도 포기가 안 되는 사람, 아무래도 힘이 딸리는 사람, 앞날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많이 힘들다. 아주 많이 힘들다.


나의 경우는 불평등함을 참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현재형이다. 아직도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은 평등할 수가 없다는 것.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 애를 낳으면 절대로 평등할 수가 없다. '자기가 한 일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지.'하는 이상은 이 곳에서는 완벽하게 뒤집어진다. 남자가 저질러도 책임은 여자가 진다. 여자가 저질러도 책임은 여자가 진다. 왜냐면 애를 가지고 낳는 사람은 여자이며 어린 아기를 키울 사람 역시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평등이 싫다고 여자가 거부하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게 된다. 누군가가 희생하고 정성을 쏟아주지 않으면, 아이는 잘 자랄 수가 없다. 관심을 못 받은 만큼 병이 든다고 보면 된다.(그래서 친정 엄마 시어머니가 애를 키워주는 여자는 '신의 딸' 그런 얘기가 나오는거다.)


나는 '평등하게 가사와 육아를 나누려고 하는' 요즘의 젊은 남성들의 의지가 어디까지 남자의 변신을 가능하게 할 지 잘 모르겠다. 일단은,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고, 원래부터가 '가정적' 혹은 관계의 기술이 뛰어나고 집안일 하는 능력이 기본으로는 장착이 되어 있어야 성공적으로 반분은 못 되더라도 뭐 그나마 살만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본인들이 잘 하고 싶어도 이렇게 환경이 안 좋으면 참 잘 하기 어렵다.


운이 좋으신 분들은 '가정적인' 남편을 만나서 그럭저럭 행복하게 애를 낳아 키울 수 있다. 이 놈의 사회가 지금보다 많이 정상화된다면 말이다. '여자에게 잘 해주는 남자'가 최고라고들 결혼한 여성분들이 얘기해도, 처녀들은 듣지를 않는다. 멋진 남자,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나도 결혼한지 십년을 넘고 나니 아, 나한테 잘 해주는 남자가 최고구나, 싶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고;;; 아마도 이 미래를 미리 안다고 해도 내가 그 시기로 다시 가서 '가정적인', '나한테 잘 해주는' 남자를 골라 결혼할 것 같지는 않다.


사랑하는 남자인지, 나한테 잘 해주는 남자인지, 아니면 조건이 좋은 남자인지;; 의견이 분분한 것 같지만 십년 넘게 살아본 나의 의견은 이렇다. 사랑이 없으면 결혼을 하면 안 된다. 왜냐면 결혼은 특히나 한국사회에서 하는 결혼과 양육은 굉장히 힘든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사랑 없이 했다가 그 어떤 증오의 관계가 될지 모르는거다. 사랑해서 해도, 십년씩 애 키우느라 허덕이다 보면 있던 사랑이 다 어디로 새어나가 버린다. 실은, 대개 십년까지 가지도 않는 것 같다. 사랑의 호르몬은 4년이면 끝난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냥 4년을 사귀는 것과 아이를 같이 낳아 키우는 것은 천지차이다. 아주 진하고 깊은 감동과 처절한 고통, 길고 긴 시간 동안 이어지고 변화발전 퇴락과 재생을 거듭하는 아주 희안한 관계이다. 아이는 부부를 결속시켜주지만, 동시에 커플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다 갖다 육아에 쓰도록 만들기 때문에(이 놈의 나라는 필히 그러하다.) 정말 의식을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을 유지하기가 힘든 것 같다.


사이 좋게 손 잡고 다니는 노부부의 환상을 우리는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들한테 그 마음 속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다니시는 분들은 남편이 젊었을 때 아주 크게 잘못을 해서 속죄를 하느라 손잡고 다니시는 거라고 한다. 내 생각엔 오래된 커플일수록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많아져도 어차피 갈라질 게 아닌 이상 앞에 있는 상대에게 너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얘기하는 것도 쓸데없는 일이니까 그냥 사는게 아닐까 싶긴 하다. 하지만 모르는거다... 안 살아봤으니.


아무튼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여자는 일단은 행복한 여자다. 아직 낳지 않았으니까. 정말 축하를 드리고 싶다. 본인의 인생을 더 진실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선택의 기회를 지금 갖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나라꼴이 좀 제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으니까 몇년 더 관망해보고 결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아주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얘기하지만 사회환경이 좋으면 그럭저럭한 남자를 만나도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 수가 있지만 사회환경이 지금과 같이 아주 안 좋으면 상위 10% 정도의 (경제 아님. 인격 등등 조건) 훌륭한 남자를 만나도 쉽지 않다...(물론 불가능이란건 없지만..)


지금보다 얼마나 더 좋아지면 애를 낳을 수 있을 것인지, 조목조목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8시간 노동과 칼퇴근, 쌍방 육아휴직이 얼마나 지켜진다면 가능할지, 나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면 양육비 정부보조금이 어느 정도면, 미친듯이 돌아가는 사교육 광풍이 어느 정도나 해소가 되면 나의 애가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을지.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애를 키우고 나서 내 영역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떤 전망을 가질 수 있을지, 나의 육아 적성, 가사 적성은 어느 정도일지, 무엇보다도 중요한 나의 체력과 정신력은 어느 정도까지 버틸 수 있고 또 유지하고 키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남자와 결혼할 것인지도.


아니, 결혼은 사랑하는 남자와 하는 거라며? 그렇다. 그러나 어떤 남자와 결혼할 것인지는 조정 가능하다. 내가 어떤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지, 왜 사랑에 빠지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싸우고 있는지를 공부한다면, 충분히 조정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번 글을 기다려 주시압.


물론 애를 낳으면 좋은 점도 있다. 그것도 다음에. 사회가 요모양 요꼴이 아니고 북유럽 정도만 받쳐주어도 애를 낳는 것은 인생의, 특히나 여자 인생의 큰 축복, 순수한 축복이 될 것이다.


애를 언제 낳을 것인가?




핑백

  • 나의 리듬을 찾아서 : 애를 언제 낳을 것인가? 2017-06-18 10:56:04 #

    ... 낳기로 결정하신 분들은 이번 생이 그래도 낙관적으로 보이는 분들이니, 축하를 드려야겠다. ^^; 기왕 이 길로 들어오신 거, 잘 하시기를 빈다. 애 잘 낳는 법 애를 낳을 것인가? ... more

덧글

  • redbamboo 2017/06/17 01:40 #

    순수한 축복과 내 인생의 저당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 중입니다 ㅎㅎㅎ
    누군가 아직 게임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빨리 손 털고 나가라고 하고 싶군요
  • 리듬 2017/06/18 11:01 #

    ㅋㅋㅋㅋㅋ 좋아요 100개 누르고 싶네요..^^
  • 라비안로즈 2017/06/20 15:37 #

    정말.. ... 되돌아가서 다시 결혼하라면.. ㅎㅎㅎㅎ 글쎄요. 저도 망설여질것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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