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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니 오페라 노르마, 인생 아는 여주 음악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는 흥미롭다. 보통 진지한 오페라들은 선남선녀, 즉 잘 생긴 미혼남녀들이 주인공인데, 노르마는 애가 둘이나 딸린, 사랑이 변할 만큼 변할 충분한 시간이 흐른 커플이다. 남자쪽이 이미 사랑이 식어서 다른 여자를 좋아하면서 극이 시작된다. 철모르는 어린애들이 아니다. 인생 좀 아는 커플의 심각한, 그러나 비극이다.
 

그리고, 노르마가 권력을 가진 사제라는 점도 흥미롭다. 상대 남자도 로마의 총독이긴 하지만, 노르마의 권력은 속세의 군대를 이끄는 백발 성성한 아버지도 딸인 노르마의 계시만 기다리는... 게다가 적군의 장군과 사랑을 나누면서 애를 둘이나 낳아서, 아무도 모르게 키웠다는 점도... 범상치 않는 여자다. 보통 오페라의 청순가련형 여성과는 정말이지 은하수만큼이나 멀고 먼 거리가 있다. 재미있게도 딱 청순가련형의 여성이 극에 한 명 나와주기도 하는데, 그 여자는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가장 엄청난 것은 변심한 남자 때문에 열받는다고 전쟁을 소집하는 장면... 아무리 본인의 목숨도 내놨다지만... 정말이지 다른 모든 오페라의 생떼쓰는 남자들의 레벨을 뛰어넘는... 엄청난 여자인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 여자는 사랑을 잃고 목숨을 저버리는,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선택을 하며, 그 과정에서 연적이 되는 아달지사와 놀랍게도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두 여자가 서로 양보하는 말도 안 되게 고결한 이중창 '보세요, 노르마.'(Mira o Norma)와 마지막의 '당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이제 아나...' 하는 노르마와 남주의 장면이다.


보통은 오페라의 여자 주인공은 소프라노가, 남자 주인공은 테너가 맡으며 바리톤이나 베이스, 메조소프라노 중에 한명은 그 둘을 훼방놓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인물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오페라는 안 그렇다. 문제의 변심한 남주인 테너, 그 사람만이 문제이며 사랑의 연적인 아달지사는 고결하고 순수한 심성으로 노르마를 깊이 신뢰하고 따르는 여자라서, 그리고 노르마 역시 훌륭한 인격의 여자이기 때문에 그 둘은 서로 싸우는게 아니라 서로 양보하며 위로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상대의 기쁨과 고통과 모든 것을 아는 여자들의 공명을 둘의 이중창 장면에서 느낄 수 있다. 정말 아름답다. Mira o Norma 외에 1막의 O arimmembranza!도 정말 기가 막힌다.

 

그리고 재미나게도 보통은 노르마를 소프라노가 아달지사를 메조소프라노가 맡지만 맨처음 초연엔 노르마가 메조소프라노이고 아달지사가 소프라노였다고 한다. 벨리니가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주디타 파스타를 위해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주디타 파스타가 소프라노라고도 하고. 뭐랄까 마리아 칼라스 같은 인물이였을까? 메조소프라노지만 콜로라투라 영역까지 음역이 높은?(아마도) 그리고 소프라노 둘이서 노르마와 아달지사를 맡는 일도 꽤 있었다. 재미있게도 몽셰라 카바예는 젊어서는 (조안 서덜랜드가 노르마일 때) 아달지사를 부르고, 나이 들어서는 노르마를 부른다.


요즘의 바르톨리의 노르마 음반은 옛날처럼 메조소프라노인 바르톨리가 노르마를, 소프라노인 조수미가 아달지사를 맡았는데, 매우 말이 되는 하모니를 보여주고 있다. 파워있고 드라마틱한, 원숙한 노르마 역에는 바르톨리가 딱이고, 청순하고 고결한, 젊은 아달지사의 역에 조수미의 청순가련한 목소리가 그냥 딱이다. 실제로는 조수미가 바르톨리보다 몇살 더 많지만 말이다. 조수미의 청순가련형의 성공은 어쩌면 그 역할이 로맨스가 아니라 우정이라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원래 감정표현이 풍부하지 않은 편이라. 그래도 코믹 연기는 참 끝내주시는데)


디미트라 테오도슈의 디비디를 먼저 봤는데, 정말 테오도슈도 훌륭하고 꽤 재미있게 봤지만 테너가 좀 박력이 안 나와서 아쉬움을 느꼈고, 무대도 약간 어색하긴 했다.


그래서 고클에서 숭상하는 몽셰라 카바예의 그리스 야외극장 공연을 한참 기다려 아마존에서 공수받아서 보았는데... 정말이지 멋진 공연이었다. 테너도 박력있고 훌륭하고, 무대와 합창단, 카메라 워크까지 전체적으로 아주 매끄러운 전개로 지루함 느낄 새를 안 주는 대단한... 시작부터 박력있게 서곡을 열며 나오더니 노르마의 '정결한 여신'에서 따악 모아주며 끝나는... 엄청난 공연이었다. 이렇게 박력있는 시작 아직 못 본거 같다.

 

내가 아직 오페라를 많이 못 보긴 했지만, <청교도> 보고는 벨리니가 그런가부다...하고 느릿느릿한 전개와 억지스러움들을 참고 그 아름다운 선율만을 선택적으로 들어야하는게 벨리니인줄 알았는데 왠걸, 완전 멋진 전개... 베르디보다 더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 <노르마>는 그렇다. 정말 극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완벽하게 짜여있다.

정말이지 벨리니가 요절만 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노르마보다 더 끝내주는 작품들이 나왔을지도... 아쉽다. 작곡가는 오래 살아야 한다. 베르디를 보라! 나도 70대의 전성기를 목표로 열심히 몸 관리하고 머리 관리하고 노력하고 있다.^^;


디미트라 테오도슈의 디비디가 한국출시라 알라딘에서 쉽게 살 수도 있고 우리말 자막도 있어서 처음 보기엔 좋으나 영어 자신있는 분들은 카바예로 직행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노르마의 지존은 역시 마리아 칼라스! 그러나 몽셰라 카바예의 노르마 역시 아주 훌륭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칼라스의 노르마 공연을 볼 수가 없다. 음반을 들으며 상상할 뿐이다. 그리고 나도 예전엔 마리아 칼라스의 그 카리스마에만 압도되어서 무조건 숭앙했었으나 카바예의 그 사람의 가슴을 막 녹이는 꿈결같은 부드러운 소릿결은 정말이지... 그 부드러움이 강인한 노르마의 카리스마와 결합되었을 때의 아우라는 굉장한 것이다!


Maria Callas Casta Diva from Norma by Vincenzo Bellini
https://www.youtube.com/watch?v=MhHqwwT02JM


Montserrat Caballe "Casta diva" Norma Orange 1974
https://www.youtube.com/watch?v=FIQQv39dc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