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리듬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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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과 순결한 두뇌 그외

어린 시절, 나는 과일을 깎는 것을 배우면서 배려와 양보를 배웠다. 즉슨, 과일을 깎는 사람이 제일 작은 쪼가리를 먹는 것이 훌륭한 행위였다.


사과 같이 네쪽으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은 큰 문제가 없지만, 복숭아나 배 같이 껍데기를 먼저 깎은 후 살만 잘라서 먹어야 하는 놈들은 언제나 과일 깎는 사람의 양식을 시험에 들게 했다. 즉, 나는 언제나 보름달 같이 동그란 놈들을 먹고 싶었으나 어른이나 동생한테 양보해야 할 때가 많았다. 내가 칼을 잡았을 때는 거의 예외 없이 보름달을 먹을 수 없었고 중간 것들마저 양보하고서 자잘한 놈들을 해치우며 그 행위에 몰입함으로써 아쉬움을 달랬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어린 시절이 아니라 자취 시절에 과일 깎기를 익힌 남편을 보니 과일 깎는 자의 디폴트 배려 따위는 전혀 개념도 없었다. 먹고 싶으면 먹는거고 빠른 사람이 먹는거고 뭐 그런...
 

아빠 다음에 엄마, 다음에 언니 순으로 그리고 맨마지막에 내 밥을 푸는 밥 푸는 순서 따위는 전혀 입력되지 않은 남자들의 순결한 두뇌를 보면,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되려 희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결혼전에는 꼭 서열순으로 밥을 푸던 나도 결혼후에는 대충, 그릇 꺼내기 쉬운 순서나 기타 우연에 맡기고 밥을 푼다.

요즘엔 나도 가끔 보름달을 먹는다. 거의 매번 내가 과일을 깎기는 하지만, 거의 매번 자잘한 놈들을 먹기는 하지만, 보름달을 먹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아이들은 보름달을 좋아하긴 하지만, 또 그닥 신경쓰지도 않는 것 같다.


2017.8.2.


덧글

  • 달찡 2017/09/09 11:16 #

    누군가 가르쳐 주진 않았지만... 항상 양보하며 살았던거 같아요.. 과일을 먹었던 시절엔 제일 안좋은 모양만 골라서 먹었고(다른일에도).. 나중엔 안먹게 되었지만요ㅎ(전에 페북에서도 말씀드렸던ㅎ)... 누구나에게 친절하고 도와주며 의로움을 행하며 살았던거 같아요... 저는 착한사람으로 살아온줄 알았는데.... ㅠㅠ 이제서야 조금 눈이 띄워지니 그냥 호구였어요ㅎ... 그래서 예전에 항상 주변에 안좋은 사람들이 모였던거 같아요...

    p.s 늦었지만.. ㅠㅠ 마음 아프시겠어요...ㅠㅠㅠㅠㅠ 삼가 고인(친한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ㅠ

  • 리듬 2017/09/09 13:53 #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많은 우연의 조합이지만, 또 필연인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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